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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에서 영화처럼

by ranisamo8 2025. 4. 10.

마카오 축제의 불꽃놀이 풍경입니다

 

마카오는 어딘지 모르게 이국적인데도 낯설지 않고, 작지만 밀도 있게 다채로운 풍경을 품고 있는 도시예요.

중국 남부 해안에 자리한 이 작은 특별행정구는 단순히 '카지노 도시'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포르투갈과 중국 문화가 절묘하게 섞여 만들어낸 독특한 색채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곳이랍니다. 마치 한 권의 오래된 동화책을 펼쳤을 때 느껴지는 그 고전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느낌처럼요.

 

홍콩에서 페리를 타고 약 한 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마카오는, 여행자 입장에선 접근성도 좋고 규모도 아담해서 하루나 이틀이면 어느 정도 둘러볼 수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얕보고 지나치기엔 아쉬운 곳이죠. 천천히 거리를 걸으며 이 도시만의 결을 느껴보는 게 진짜 마카오를 만나는 길이에요.

 

마카오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고풍스러운 유럽식 건물들이에요. 중국 땅 한복판에서 포르투갈풍의 건물들을 보는 건 꽤 묘한 경험이에요. 아기자기한 주택, 파스텔톤 외벽, 타일 장식이 아름다운 광장들. 이런 유럽적인 풍경이 번화한 도시 풍경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요. 사실 마카오는 1557년부터 1999년까지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은 곳이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도시 곳곳에서 그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져요.

 

마카오에서 영화처럼

‘세나도 광장’은 마카오의 심장 같은 공간이에요. 마카오에서 가장 활기차고 상징적인 장소인데요, 파도무늬가 아른거리는 검정·흰색 타일 바닥, 광장을 둘러싼 옛 유럽풍 건물, 거리 공연을 하는 예술가들까지. 낮에는 햇살이 건물 벽면을 따뜻하게 비추고, 밤에는 조명이 켜져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어줘요. 광장 한편엔 ‘성 도밍고 성당’이 자리하고 있는데, 노란색 외벽이 인상적인 이 성당은 내부도 꽤 고요하고 예뻐요. 이곳은 단순히 관광지가 아니라, 마카오 사람들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공간이기도 해요. 벤치에 앉아 있는 노부부, 아이들과 산책 나온 가족들, 점심시간을 맞은 직장인들까지. 그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순간, 여행자가 아닌 ‘잠시 머무는 주민’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마카오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 중 하나는 ‘성 바울 성당 유적’이에요.

원래는 17세기에 세워진 거대한 성당이었지만,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고 지금은 앞면만 남아 있어요. 벽 하나만 남았는데도 그 존재감이 어마어마해요. 고풍스러운 석조 조각들과 거대한 계단은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장엄하고, 그 앞에 서 있으면 시간의 무게 같은 게 느껴져요. 성당 뒤로는 몬테 요새가 있는데, 언덕 위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보는 풍경이 아주 멋져요. 저 멀리 카지노 호텔들의 화려한 외관과 구시가지의 낡은 지붕들이 함께 보이는 풍경은, 오직 마카오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에요.

 

마카오의 날씨는 우리나라 남부와 비슷해요. 아열대 기후라서 여름은 덥고 습하지만 겨울은 비교적 온화하죠. 가장 쾌적한 시기는 가을부터 초겨울까지인데, 이때는 낮에도 그리 덥지 않고 산책하기 딱 좋아요. 봄은 비교적 짧고, 여름은 우기라서 종종 소나기를 만나기도 해요. 하지만 비가 와도 도시는 낭만을 잃지 않아요. 오히려 젖은 타일 바닥 위로 비치는 조명이나, 우산을 쓴 채 천천히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더 정취를 느낄 수 있어요.

 

마카오에는 포르투갈과 중국 요리가 기묘하게 섞인 음식 문화가 있어요. 진짜 먹을 게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우선 ‘마카오식 에그타르트’를 빼놓을 수 없죠. 포르투갈식 '파스텔 드 나타'에서 유래된 이 디저트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고 달콤해요. 마카오에선 '로드 스토워스 베이커리'나 '마카오 타워 아래의 카페' 등에서 특히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그냥 길 가다가 한두 개 사서 걸으면서 먹는 것도 좋고요.

 

또 ‘아프리카 치킨’이라는 메뉴도 특이한데, 이건 브라질·포르투갈·인도·중국식 향신료가 다 섞인 이국적인 요리예요. 기름지면서도 묘하게 중독성 있는 맛이라서 한 번 맛보면 기억에 오래 남아요. 그리고 해산물 요리도 다양해서 조개찜, 새우볶음, 생선구이 등도 잘하는 식당이 많아요. 현지인들이 자주 가는 작은 식당에서 이런 요리를 한 상 시켜 먹으면, 관광지만 다녔을 때는 몰랐던 마카오의 진짜 맛을 알게 되는 기분이 들죠.

 

마카오는 낮과 밤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도시예요.

해가 지면 본격적으로 화려한 조명이 켜지고, 도시는 마치 다른 옷을 입은 듯 변해요. 특히 ‘코타이 스트립’이라고 불리는 지역은 라스베이거스를 닮은 대형 카지노 호텔들이 줄지어 있어요. 베네시안, 갤럭시, 윈팰리스 같은 호텔은 그 자체가 하나의 관광지예요. 실내에 베네치아 운하를 재현해 놓은 베네시안은 천장이 가짜 하늘로 꾸며져 있는데, 진짜보다 더 진짜 같아서 혼란스러울 정도예요. 카지노에 관심이 없더라도 호텔 내부 구경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어요. 분수 쇼, 테마 상점, 레스토랑, 라이브 공연 등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다양하거든요.

 

하지만 마카오는 단지 번쩍이는 도시가 아니라, 굉장히 ‘사적인 여백’이 있는 도시이기도 해요.

고요한 골목길, 벽화가 그려진 담벼락, 오래된 철제 창틀이 남아 있는 주택가들. 이런 곳을 걷다 보면 화려함 뒤에 숨어 있던 마카오의 진짜 얼굴이 보이기 시작해요. 어딘가 느릿하고 소박하면서도, 시간이 쌓인 듯한 공간들. 특히 ‘타이파 마을’이나 ‘콜로안’ 같은 지역은 관광객이 몰리는 중심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예요. 작은 골목길을 따라 아기자기한 카페와 기념품 가게들이 있고, 마치 유럽의 어느 시골 마을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요. 타이파의 '루앤 거리'에서는 꼭 전통 간식도 하나쯤 맛보시고요.

 

마카오의 매력은 도시 그 자체가 하나의 무대처럼 느껴진다는 점이에요. 거리의 색감, 사람들의 여유, 음식의 풍부함, 건물 하나하나의 결까지도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아요. 홍콩처럼 빠르고 세련된 도시도 아니고, 중국 본토의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곳도 아니지만, 마카오는 '천천히, 곱게, 다채롭게' 머물다 가야 하는 도시예요.

 

조용히 거리를 걷고, 따뜻한 햇살 아래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며, 이 도시의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걸 지켜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카오는 충분히 특별한 경험을 안겨줘요. 너무 유명하지 않은, 골목 안 작은 미술관에서 그림 한 점을 바라보는 것도 좋고요. 어쩌면 마카오는 그렇게, ‘작은 순간들’을 기억에 오래 남게 해주는 도시인지도 몰라요.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 거예요. 마카오는 그저 스쳐 지나가긴 아까운 도시라고. 가볍게 여행지를 고르려다 우연히 찾게 될 수도 있지만, 막상 다녀오고 나면 마음 한편에 오랫동안 아련하게 남는 그런 도시요. 다음엔 조금 더 여유롭게, 더 천천히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마카오. 그렇게 마카오는 여행자의 마음속에 은근히 자리 잡고,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추억이 되어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