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느낌은, 마치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배경으로 깔려 있는 유럽풍의 작은 항구 마을에 들어선 것 같을 수도 있어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수도인 이 도시는 밴쿠버섬의 남쪽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데요, 육지에서 바로 갈 수는 없고 페리나 수상비행기를 타고 들어가야 해서 그런지, 도시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뭔가 특별한 여행이 시작된다는 기분이 자연스레 들더라고요.
빅토리아의 아름다운 불빛
한눈에 봐도 이 도시는 급하게 돌아볼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모든 게 천천히 흘러가요. 거리의 사람들도 여유롭고, 카페의 분위기도 그렇고, 해안가를 따라 걷는 이들조차 급할 게 없어 보였어요. 도시 전체가 마치 시간의 흐름을 조금 늦춘 듯한 기분이에요. 이 여유로움이 빅토리아를 가장 빅토리아답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이 도시는 캐나다의 도시 중에서도 기후가 가장 온화한 곳으로 유명해요.
겨울에도 눈이 거의 안 내리고, 여름도 선선해서 1년 내내 날씨가 참 순한 편이에요. 특히 꽃이 정말 풍성하게 피는 걸로 유명한데요, 봄부터 가을까지 도심 곳곳에서 다양한 색과 향기의 꽃들을 쉽게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빅토리아는 '정원의 도시(Garden City)'라는 별명을 갖고 있기도 해요.
그리고 그 별명을 제대로 체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부차트 가든이에요.
도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버스나 차량으로 금방 갈 수 있어요. 이곳은 원래 석회석 채석장이었는데, 한 부부가 정원으로 바꿔 지금처럼 아름다운 식물의 천국이 되었죠. 계절마다 테마가 바뀌고, 특히 여름밤에는 음악과 불꽃놀이가 어우러져 마치 동화 속 정원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카메라보다 오히려 감각을 열고 천천히 그 풍경을 느끼는 게 더 좋은 곳이에요.
도심의 중심에는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의사당이 자리하고 있어요. 이 건물은 낮에 봐도 웅장하지만, 밤이 되면 조명이 켜지면서 그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요. 반짝이는 전등에 둘러싸인 돔형 지붕을 보고 있으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져요. 건물 앞 잔디밭에서는 사람들도 자유롭게 앉아서 피크닉을 즐기고, 연주를 하는 버스커들도 많아서 ‘도시 한복판에서의 피크닉’이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아요.
그 근처에 있는 인너 하버(Inner Harbour)는 빅토리아의 얼굴 같은 장소예요. 배들이 조용히 오가는 항구, 유서 깊은 건물들이 둘러싼 수변, 그리고 그 사이를 걷는 사람들까지 한 폭의 수채화처럼 느껴져요. 항구 주변에는 거리 공연도 자주 열리고, 아트 마켓이나 수공예품 판매도 많아서 천천히 둘러보는 재미가 있어요. 때때로 수달이나 바다사자가 불쑥 나타나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해요.
페어몬트 엠프레스 호텔은 꼭 숙박하지 않더라도 이 호텔에서 제공하는 애프터눈 티를 한 번쯤은 경험해 보는 걸 추천드려요. 100년 넘은 전통을 자랑하는 이 호텔의 티룸에서는 클래식한 영국식 차 문화의 정수를 맛볼 수 있어요. 고풍스러운 내부에서 나오는 은은한 홍차 향과 함께 나오는 샌드위치, 스콘, 디저트가 참 인상적이에요.
도시 곳곳에는 박물관도 많아요. 로열 BC 박물관은 캐나다 서부의 역사, 원주민 문화, 자연사 등을 아주 흥미롭게 전시해 놨어요. 단순히 유물만 나열한 게 아니라, 실제 마을을 재현한 공간도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해도 좋고, 어른들도 충분히 빠져들 수 있는 공간이에요.
한편 빅토리아는 퀘벡이나 몬트리올처럼 프랑스식 문화의 흔적이 강한 도시는 아니에요. 오히려 영국적인 느낌이 더 강해요. 그래서 건축양식이나 도시 분위기, 사람들의 말투까지도 어딘가 점잖고 차분한 느낌이 있죠. 하지만 그 속에서도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섞여 있어서, 음식이나 상점 분위기는 오히려 굉장히 글로벌하고 다양해요.
로컬 푸드를 즐기고 싶으시다면 '빅토리아 퍼블릭 마켓'에 들러보세요. 다양한 제철 채소, 수제 치즈, 로컬 맥주, 그리고 작은 식당들이 모여 있어서 간단한 한 끼를 해결하기도 좋고, 사람 사는 냄새를 느끼기에도 참 좋은 장소예요.
도심을 벗어나 조금만 차를 몰고 나가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기도 해요. 특히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드라이브 코스는 정말 멋지거든요. 다운스 로드나 오크 베이 주변은 조용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주택가가 이어지는데, 그 풍경이 평화롭기 그지없어요. 해안가를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바다를 바라보다 보면, 도시에서 느끼는 스트레스가 다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에요.
그리고 이 도시가 또 특별한 이유는 바로 ‘자전거 친화 도시’라는 점이에요. 도로 곳곳에 자전거 도로가 잘 마련되어 있어서 자전거만 있으면 웬만한 관광지들을 다 둘러볼 수 있어요. 실제로 지역 주민들도 자전거를 자주 타고 다니고, 그게 참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에요.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 도시가 ‘관광지’라기보다는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인상을 준다는 점이었어요. 여유로운 일상, 자연과 함께하는 삶, 그리고 소박하면서도 품격 있는 문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어서, 여기서는 꼭 뭔가를 하지 않아도 좋아요. 그저 걷고, 보고, 듣고, 향기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시간이 되어 줄 거예요.
빅토리아는 어쩌면 화려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는 분보다 조용하고 따뜻한 시간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더 잘 맞을지도 몰라요. 북적이는 도심에서 잠시 벗어나,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작은 골목길의 부티크에서 시간을 보내고, 향기로운 차 한 잔에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그런 도시예요. 누군가에겐 작고 조용한 곳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깊은 매력과 단단한 품격이 깃들어 있는 도시, 빅토리아는 그런 곳이에요.
많은 도시들 중에서도 이 고요하고 따뜻한 빅토리아를 만나는 여정을 선택하신다면 특별한 정서를 마음에 담아 오실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