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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미가 있는 마라케시

by ranisamo8 2025. 2. 8.

마라케시의 사원의 아름다운 문양입니다

 

모로코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광활한 사하라 사막, 다채로운 색감의 시장, 그리고 어딘가 신비로운 이슬람 문화… 그 모든 것을 한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도시가 바로 ‘마라케시’ 예요. 북아프리카의 색깔과 향, 소리와 리듬이 진하게 녹아 있는 곳이죠. 여행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 그리고 감각을 열어 두면 두 배로 즐길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마라케시는 모로코 남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아틀라스 산맥의 북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어요. '붉은 도시(Red City)'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도시 전역의 건물들은 붉은 점토 벽돌로 지어졌어요. 그래서 해 질 무렵이면 온 도시가 불타는 듯한 붉은빛으로 물들어 정말 근사한 풍경이 펼쳐져요.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이 도시에는 특별한 마법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죠.

 

풍미가 있는 마라케시

이 도시는 11세기경 베르베르 왕조에 의해 처음 세워졌고, 오랜 시간 동안 이슬람 문화와 아프리카, 유럽의 영향을 두루 받아왔어요. 덕분에 도시 전체가 마치 살아 있는 박물관처럼 느껴질 정도예요. 마라케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메디나(구시가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어요. 이곳은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자 장터였고, 지금도 그 명맥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어요.

 

마라케시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향기와 소리예요. 스파이스 마켓 근처만 지나가도 진한 커민, 시나몬, 사프란의 향이 코를 간질이고, 골목에서는 늘 사람들의 흥정 소리와 악기 소리, 이국적인 음악이 흘러나와요. 특히 제마 엘 프나(Djemaa el-Fna) 광장에 가면 이 도시에 살아 있는 모든 감각들이 한자리에 모인 느낌을 받으실 거예요. 낮엔 약초 상인, 주스 장수, 거리 악사, 뱀 부리는 사람들까지 광장이 꽉 차 있다가도, 해가 지면 각종 노점 식당이 줄지어 서고, 그 사이로 구수한 숯불 향이 퍼지죠.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카페테라스에 앉아 그 활기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멋진 경험이 돼요.

 

날씨는 대체로 따뜻하고 건조해요. 여름은 꽤 덥고 겨울은 생각보다 서늘하지만, 대부분 맑은 날씨라 여행하기엔 좋은 편이에요. 겨울 아침엔 가볍게 외투가 필요하지만, 낮에는 반팔로도 충분할 정도로 기온이 올라가요. 해가 쨍쨍한 오후에는 그늘 하나가 큰 위안이 되기도 하니, 모자나 선글라스도 챙기시는 게 좋아요. 특히 햇살이 붉은 벽과 만나면 도시가 더 빛나 보이기도 해서, 어디를 찍어도 엽서처럼 나올 만큼 예쁜 장면이 자주 보여요.

 

마라케시의 구시가지는 좁은 골목들로 얽히고설켜 있어서, 처음엔 방향을 잡기가 쉽지 않지만 그 미로 같은 길을 걸어 다니는 것 자체가 큰 재미예요. 벽 하나를 돌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골목이 나오고, 모퉁이마다 새로운 색의 가게가 펼쳐져 있어요. 수크(Souk)라고 불리는 전통 시장에 들어가면, 천으로 만든 램프부터 수제 양탄자, 가죽 공예, 도자기, 향신료까지 없는 게 없어요. 상인들과의 흥정도 마라케시에서는 하나의 문화예요. 가격을 깎고 다시 제안하고, 서로 웃으며 거래를 마치는 그 과정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곳의 리아드(Riad)도 마라케시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 중 하나예요.

리아드는 옛날 귀족들이 살던 전통 주택인데, 지금은 대부분이 고급스러운 게스트하우스나 부티크 호텔로 운영되고 있어요. 외관은 평범한 벽돌 건물처럼 보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쪽에 정원이 펼쳐지고 분수와 타일 장식, 아라비아풍 소파들이 놓인 아름다운 공간이 나와요. 마치 번잡한 도시 한복판에 숨겨진 오아시스처럼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죠. 아침이면 상큼한 오렌지 주스와 따뜻한 민트차, 올리브와 빵, 치즈 같은 로컬식 아침 식사가 정갈하게 차려지는데, 그걸 먹으면서 천천히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아주 근사해요.

 

체험해 볼 만한 일들도 다양해요. 예를 들어 마라케시 외곽에는 '자르딘 마조렐(Jardin Majorelle)'이라는 정원이 있어요.

프랑스 화가 자크 마조렐이 만든 이 정원은 이후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이 인수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죠. 이 정원은 선명한 파란색과 초록 식물이 대비되며 독특한 미감을 자아내요. 선인장, 야자수, 연못, 그리고 모던한 이슬람풍 건축물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산책을 하다 보면 마치 색채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어요. 혼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잠시 여유를 누리고 싶을 때 제격이랍니다.

 

또 조금 여유가 있다면 마라케시에서 출발해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 베르베르 마을이나 사하라 사막으로 1박 2일 투어를 다녀오는 것도 추천드려요. 모래언덕 위에서 일몰을 보거나, 밤하늘 가득 별을 보는 경험은 정말 특별해요. 현대적인 도시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자연의 광활함과 고요함이 있어요. 그리고 돌아와 마라케시의 분주한 삶과 다시 만나면, 그 대비가 더 크게 다가오기도 해요.

 

마라케시에서는 전통 모로코 요리인 타진(Tagine)과 쿠스쿠스를 꼭 드셔보셔야 해요. 타진은 뾰족한 뚜껑을 가진 도자기 냄비에 고기나 채소, 향신료를 넣고 천천히 끓여 만든 요리예요. 향이 아주 깊고, 입 안에서 부드럽게 녹는 고기의 질감이 인상적이에요. 쿠스쿠스는 쌀알처럼 보이는 세몰리나로 만든 요리로, 고기나 채소와 함께 곁들여 먹어요. 또 민트차는 모로코 사람들에게는 거의 생활의 일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식사 후에 꼭 마시는 습관이 있어요. 뜨거운 물에 민트와 녹차, 설탕을 넣고 우린 이 차는 단맛이 꽤 강한데, 이상하게도 한 모금 마시면 기분이 편안해져요.

 

마라케시는 단순히 이국적인 관광지가 아니라, 오랜 문화와 전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도시예요.

화려함 뒤에 고요함이 있고, 혼잡함 속에 질서가 있고, 거칠게 보이는 표정 뒤에는 따뜻한 친절이 숨어 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낯설고 조금은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며칠 머물다 보면 하나하나에 정이 들어요. 가게 주인이 건네는 인사, 리아드 직원의 세심한 배려, 시장에서 마주친 아이의 장난스러운 눈빛… 그런 순간들이 하나하나 쌓이면서 여행이 완성되는 거죠.

 

여행지를 고를 때 ‘색다름’을 기대하신다면, 마라케시는 그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켜 줄 도시예요. 오감이 깨어나는 경험, 시간의 결을 느끼는 골목길 산책,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심 어린 교류까지.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세계에 스며들고 싶을 때 이 도시만큼 좋은 곳도 드물 거예요.

 

마라케시는 결국 ‘느끼는 도시’ 예요. 많이 보려고 하지 않아도, 계획을 빡빡하게 세우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냥 그 안에 머물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경험하면 돼요. 그러면 어느 순간, 그곳의 붉은 벽돌 냄새, 민트차의 향기, 그리고 황혼 무렵 제마 엘 프나의 소란한 풍경이 마음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 거예요. 언젠가 다시 찾고 싶은 이유가 되는, 그런 도시가 바로 마라케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