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셔스(Mauritius)라는 섬에 직접 발을 디뎌보면, 이 섬은 단순히 바다가 예쁜 휴양지가 아니라, 자연과 사람, 문화와 시간이 공존하는 아주 특별한 공간이라는 걸 느끼시게 될 거예요. 인도양 남서쪽 끝자락, 마다가스카르의 동쪽 바다 위에 조용히 떠 있는 이 섬은, 지리적으로는 아프리카에 가까우면서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아시아의 향기, 유럽의 분위기, 아프리카의 리듬이 함께 녹아 있는 독특한 세계를 보여줍니다.
에메랄드 빛 모리셔스 공화국
공항에 내리자마자, 바람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바다 냄새도 나고, 어디선가 익숙한 듯 낯선 향신료 냄새도 섞여 있어요. 공기는 습하지만 답답하지 않고, 해가 비추는 그늘조차 눈부시게 맑은 그런 느낌이죠. 차를 타고 시내로 이동하면서 창밖을 보면, 푸른 사탕수수 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요. 이 섬의 역사에서 사탕수수는 단순한 작물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와 노동 이주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존재이기도 해요. 한때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 지배를 거치며 수많은 인도와 아프리카계 노동자들이 이곳으로 이주했고, 그들의 후손들이 지금의 모리셔스를 이루고 있죠.
그래서 이곳의 사람들은 피부색도 다양하고 사용하는 언어도 풍부해요.
일상에서는 모리셔스 크레올어가 가장 많이 쓰이지만, 영어와 불어도 흔하게 들립니다. 시장에서는 힌디어가 오가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이곳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국적이나 배경을 따지지 않고 사람을 먼저 대하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요. 길을 묻거나 가게에서 물건을 고를 때, 어떤 어색한 상황에도 자연스럽게 웃으며 도와주는 모습이 참 인상 깊어요. 바닷가 마을의 작은 슈퍼마켓에서도, 커다란 리조트의 프런트 데스크에서도, 같은 여유와 친절이 흐르죠.
바다는 말할 것도 없어요.
바다가 아름답다고 이야기할 때 흔히 쓰는 표현들이 오히려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예요. 특히, 해변 마을인 트루오도스(Trou aux Biches)나 벨마르(Belle Mare)에서는 파란색이 여러 겹으로 겹쳐진 듯한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고, 모래는 밀가루처럼 부드러워서 맨발로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요. 물속은 너무 맑아서 바닥이 훤히 보이고, 산호초 사이로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스르르 지나가는 걸 그냥 서서 보고만 있어도 시간이 금방 흘러갑니다.
모리셔스에서의 하루는 그야말로 자연 속에서 녹아드는 하루예요.
아침에는 리조트에서 제공하는 열대과일이 듬뿍 담긴 아침 식사를 천천히 즐기고, 그 후에는 스노클링이나 카약을 타러 나갈 수 있어요. 혹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파라솔 밑에 누워 책을 읽거나 졸다 보면, 그게 바로 이 섬이 주는 가장 큰 호사라는 생각이 들어요. 바쁘고 복잡한 삶을 벗어나서, 아무 일도 계획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것. 그 자체로도 너무나 값진 체험이에요.
조금만 움직여 보면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장소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섬 중앙에 자리한 샹젤리랑 국립공원(Black River Gorges National Park)은 푸른 정글 같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어요. 걷다 보면 원숭이와 마주칠 수도 있고, 멸종 위기인 새들 소리도 들려요. 숲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정상에서 바라보는 인도양의 풍경이 펼쳐지는데, 이건 해변에서 보는 바다와는 또 다른 감동이 있어요. 끝없이 이어지는 수평선과 함께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데, 그 순간 마음이 참 고요해져요.
그리고 꼭 들러야 할 곳 중 하나는 ‘샤마렐(Chamarel)’이라는 작은 마을이에요.
여기에는 일곱 가지 색깔로 층층이 쌓인 땅, 일명 ‘세븐 컬러드 어스(Seven Colored Earths)’가 있어요. 자연 현상으로 이렇게 다채로운 색이 생겼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빨강, 보라, 노랑, 파랑이 번지듯 이어진 언덕을 마주하게 되면 그냥 말문이 막히게 돼요. 근처에 있는 폭포도 멋지고, 현지 럼(Rum) 양조장에 들러 시음을 해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이 나라의 사탕수수 농업이 어떻게 럼 산업으로 연결되는지 직접 보고 맛보면,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이해하는 여행’이 되는 느낌이에요.
모리셔스는 또 음식이 정말 다양해요.
이곳에선 인도 카레도 먹을 수 있고, 중국식 볶음면도 쉽게 만날 수 있어요. 프랑스풍의 베이커리도 거리 곳곳에 있고, 크레올 스타일의 해산물 요리는 그야말로 입 안에서 바다가 녹는 듯한 맛을 선사하죠. 특히 ‘달푸리(Dhal Puri)’라고 부르는 인도식 얇은 빵 안에 콩 페이스트와 피클, 카레를 넣어 싸 먹는 간식은 시장이나 길거리에서 흔히 팔리는데, 이게 정말 맛있고 가격도 부담 없어서 여행 중에 자주 손이 가요. 모리셔스 사람들이 ‘이건 우리 소울푸드야’라고 말할 만큼, 그 나라의 정서를 담고 있는 음식이에요.
저녁이 되면 섬의 분위기는 좀 더 잔잔해져요.
해가 바다 건너로 천천히 내려앉으면서 하늘은 보랏빛, 분홍빛, 주황빛으로 물들어요. 그때가 되면 현지인들도 일과를 마치고 가족과 함께 해변에 나와 산책을 하거나, 친구들과 조용히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요. 여행자들 역시 그 곁에서 함께 시간을 흘려보내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이 섬의 일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 바에서 레게 음악이 흘러나오면, 발걸음을 멈추고 잠깐 리듬에 몸을 맡기게 되는 순간도 찾아옵니다.
모리셔스에는 ‘모 리샨 웨이(Mauritian way)’라고 불리는 삶의 태도가 있어요.
경쟁보다 공존을 중요하게 여기고, 속도보다는 여유를 중시하고, 화려함보다는 진심을 더 가치 있게 여긴다고 해요. 그래서 이 섬에서 보내는 며칠은 단순히 풍경을 보는 여행이 아니라, 그런 삶의 방식과 마음가짐을 자연스럽게 배우는 시간이 되기도 해요. 일정이 빠듯하지 않아도 괜찮고,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이 섬은 조용히 알려줘요.
모리셔스를 떠나는 날이 되면, 마음속에 남는 건 눈부신 바다보다 그 안에 담긴 온도와 사람들의 미소일 거예요.
그냥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그 안에서 함께 숨 쉬던 시간과 감정들이 오래오래 남게 되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다시 이 섬을 찾고 싶다고 말하는지도 몰라요. 바쁜 일상 속에서 가끔은 ‘그 섬에선 이 시간이 참 느긋했지’ 하고 떠올릴 수 있다면, 그건 아주 좋은 여행의 흔적일 거예요.
모리셔스는 그런 섬입니다. 조용히 다가와서, 천천히 마음속에 남는 곳. 태양과 바람과 물, 그리고 사람들이 빚어낸 작은 낙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