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보석, 멕시코 남동부에 있는 휴양도시인 칸쿤은 주 내 최대도시인데요.
세계관광기구의 인증을 받은 관광 특화 도시인 이곳은 제16회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이곳에서 열려 그것을 '칸쿤 협약'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함께하는 곳입니다.
휴양의 도시 칸쿤
칸쿤(Cancún). 이 이름만 들어도 어딘지 모르게 태양 냄새가 나고, 바다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한 기분이 드시죠? 멕시코의 카리브해 쪽 끝자락, 유카탄 반도 동쪽 해안선에 자리 잡은 이 도시는 휴양지의 대명사처럼 불리기도 하지만, 막상 그 땅을 직접 밟고 보면, 단지 해변만 예쁜 도시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칸쿤은 그야말로 오래된 문명과 현대적 여유가 한 공간에 어우러져 살아 숨 쉬는 곳이에요. 단순히 ‘잘 쉬고 오는 여행지’가 아니라, 돌아오고 나면 머릿속에 잔잔한 파도와 함께 한편에 정감 어린 기억을 남겨주는 도시라고 할 수 있어요.
처음 칸쿤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건, 믿기 힘들 정도로 맑고 짙은 청록색 바다예요.
바다가 왜 저런 색을 띠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그 이유보다는 그 색이 주는 감동 자체에 더 집중하게 되는 곳이죠.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수면 위로는 제트스키가 쏜살같이 지나가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바나나보트를 타고 웃음소리를 터뜨리는 사람들이 보여요. 그런데 이런 활동적인 모습들 이면에는 참 고요한 풍경도 함께 있어요. 새벽녘, 아직 세상이 잠에서 덜 깬 시간에 해변을 걷다 보면 하얀 모래 위에 어렴풋한 발자국 몇 개만 남아 있고, 파도 소리는 마치 세상을 깨우는 알람처럼 잔잔히 울리거든요.
사실 칸쿤은 원래부터 유명한 도시였던 건 아니에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소규모 어촌에 가까웠고, 관광객들도 거의 없었죠. 그런데 멕시코 정부가 이 지역을 ‘관광 개발 특구’로 정하고 본격적으로 개발에 들어가면서, 지금의 칸쿤이 탄생했어요. 그래서인지 도시 자체는 매우 현대적이에요. 고층 호텔들, 대형 쇼핑센터, 트렌디한 레스토랑들이 길 따라 쭉 늘어서 있고, 각종 리조트는 ‘호텔 존(Hotel Zone)’이라는 구역으로 따로 정리돼 있어서 편리하게 여행할 수 있어요.
하지만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전혀 다른 칸쿤이 펼쳐집니다.
마야 문명의 숨결이 아직 살아 있는 이곳에는 옛날 사람들이 신과 자연에 대한 경외를 담아 세운 신전, 광장, 계단식 피라미드 같은 유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어요. 가장 유명한 유적지인 ‘치첸이사(Chichén Itzá)’는 칸쿤에서 차로 몇 시간 걸리는 거리에 있지만, 한 번쯤 꼭 다녀오기를 추천드리고 싶어요. 거대한 계단식 피라미드인 ‘엘 카스티요’ 앞에 서 있으면, 도대체 어떻게 이걸 수천 년 전에 지었을까 싶은 경외심이 절로 생기거든요. 해마다 춘분과 추분에는 계단 옆에 뱀의 형상이 그늘로 드리워지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마야인들의 천문학적 지식이 얼마나 정교했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또 칸쿤을 말하면서 '세노테(Cenote)'를 빼놓을 수 없어요.
이건 마야 문명 시절부터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던 자연 석회동굴 수영장 같은 곳인데요, 멕시코 유카탄 지역에만 수천 개가 있다고 해요. 칸쿤 주변에도 정말 멋진 세노테들이 많습니다. 어떤 곳은 햇빛이 동굴 천장 틈 사이로 들어와 물 위에 금빛 길을 만들고, 어떤 곳은 푸르고 깊은 물아래로 뿌연 고요함이 감돌아요. 세노테에 들어가서 물에 몸을 띄우고 눈을 감고 있으면, 마치 태고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신비롭고 편안해요.
칸쿤의 매력 중 하나는 바로 ‘느긋한 일상’이에요.
현지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서 그걸 그대로 느낄 수 있어요. ‘마냐나(Mañana)’라는 스페인어 단어가 ‘내일’이라는 뜻이긴 한데, 멕시코 사람들 사이에선 ‘서두르지 말자’라는 의미로 통하기도 해요. 시간이 조금 느리게 흐르는 것 같은 이곳에선, 가게 문이 제시간에 안 열려도, 버스가 조금 늦게 와도, 사람들이 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요. 대신 여유를 즐길 줄 아는 분위기가 있고, 여행자로서 그걸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도 ‘조금은 덜 바쁜 사람’이 되어 있어요.
시장에 가면 현지 사람들의 생활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데, 칸쿤 시내에 있는 ‘파르마르케 28(Mercado 28)’ 같은 전통 시장에 가보면 다양한 수공예품, 향신료, 전통 의상, 그리고 길거리 음식들이 한눈에 들어와요. 여기서 파는 타코나 엘로테(구운 옥수수), 프레시한 과일주스는 가격도 저렴하면서 현지의 맛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서 정말 매력적이에요. 시장 상인들과 웃으며 흥정하는 그 과정도 이 나라 여행의 큰 재미 중 하나고요.
먹을거리 얘기가 나왔으니, 칸쿤의 음식 문화도 조금 더 이야기해 볼게요.
멕시코 요리는 단순히 맵거나 자극적인 맛이 아니라, 각 지역마다 고유의 레시피와 식재료가 있어서 생각보다 깊은 풍미를 가지고 있어요. 칸쿤에서는 특히 해산물이 신선하고 다양하게 준비되는데, 생선 타코나 세비체(레몬즙에 절인 해산물 요리)는 꼭 드셔보시면 좋겠어요. 또, ‘코치니타 피빌(Cochinita Pibil)’이라는 요리는 유카탄 지방의 전통 음식인데, 향신료와 오렌지 주스를 섞은 마리네이드에 돼지고기를 재워서 바나나 잎에 싸서 구운 음식이에요. 고소하고 부드러운 식감에, 특유의 감칠맛이 입안 가득 퍼지거든요.
낮에는 태양이 뜨겁고 바다는 반짝이지만, 밤의 칸쿤은 전혀 다른 분위기로 바뀌어요. 해질 무렵 해변을 따라 걷다 보면 붉고 주황빛으로 물든 하늘이 온 바다를 감싸는 듯한 풍경을 마주하게 돼요. 그 시간대에 파도 소리는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바닷바람은 하루 중 가장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순간에 느긋하게 칵테일 한 잔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여유는, 도시에서 쉽게 얻기 힘든 선물이 되곤 해요.
그리고 밤이 깊어지면 ‘칸쿤 다운타운’이나 ‘호텔 존’ 근처의 바, 클럽들이 활기를 띠기 시작하는데요, 단순히 시끄러운 파티 문화만 있는 건 아니고, 생음악을 들을 수 있는 라틴 바라든가, 바다를 바라보며 조용히 맥주 한 잔 마실 수 있는 루프탑 바도 다양하게 있어요. 멕시코 사람들이 얼마나 음악과 춤을 사랑하는지도 이런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알 수 있어요. 음악이 흐르면 누구나 흥겹게 몸을 흔들고, 낯선 사람들끼리도 금방 친구가 되니까요.
칸쿤은 처음엔 ‘그냥 놀기 좋은 곳’ 정도로 여겨질 수 있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오래된 이야기와, 깊은 자연, 느긋한 사람들의 삶이 오롯이 살아 있는 도시예요. 여긴 그저 발을 담그는 해변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천천히 담가볼 수 있는 곳입니다. 도시의 시간을 잠시 멈추고 싶을 때, 혹은 단순히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칸쿤은 그 갈증을 말없이 풀어주는 따뜻한 답장이 되어줄 거예요.
그렇게 칸쿤에서 보내는 며칠이 지나고 나면,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바다의 색을 자꾸 떠올리게 되고, 태양 아래 빛나던 모래알들이 기억 저편에서 반짝일 거예요. 그 기억이 한동안 우리 마음속을 가볍게 만들어줄 겁니다. 칸쿤은 그런 도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