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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로 통하는 그리스

by ranisamo8 2025. 2. 8.

크레타의 청명하고 아름다운 하늘과 바다입니다.

 

 

그리스의 섬들이 하나같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산토리니의 하얀 집들과 에게해의 푸른 바다, 미코노스의 활기찬 해변들… 그런데 그중에서도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시간의 깊이와 자연의 다양함, 사람들의 삶이 다정하게 얽혀 있는 섬이 있다면 그건 아마 크레타(Crete) 일 거예요. 이곳은 그리스에서도 가장 크고, 가장 다양한 얼굴을 가진 섬이에요. 아마도 ‘그리스 본토보다 더 그리스다운’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예요.

 

크레타는 그리스 남쪽, 에게해와 리비아 해 사이에 길게 뻗어 있는 섬이에요. 북쪽 해안은 부드럽고 도시들이 많지만, 남쪽은 절벽과 계곡, 조용한 해변이 어우러진 비교적 거친 풍경이에요. 이곳은 한때 유럽 문명의 시작점으로 알려진 미노아 문명의 중심지이기도 했어요. 미노타우로스 신화와 크노소스 궁전 이야기를 들어보셨다면, 그 배경이 바로 이 섬이에요. 즉, 단순한 휴양지라기보다는 그리스 신화와 고대 유적, 자연과 현대적인 삶이 한데 섞인 입체적인 공간이죠.

 

크레타에 처음 발을 들이면 느껴지는 건 자연의 풍성함이에요. 올리브 나무가 빽빽이 늘어선 들판, 포도밭과 아몬드 나무, 해안선마다 다른 색을 띠는 바다… 땅은 기름지고 바람은 향기로워요. 이 섬에서 생산되는 올리브 오일이나 치즈, 와인은 그리스 내에서도 품질이 좋기로 유명해요. 그래서인지 음식도 대체로 간단하지만 깊은 맛이 나요. 식당에 앉으면, 고운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이 듬뿍 뿌려진 샐러드와, 꿀과 견과류가 들어간 전통 디저트가 자주 등장하죠.

 

크레타로 통하는 그리스

섬의 날씨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인데요, 봄부터 가을까지는 대체로 따뜻하고 햇살이 많아요.

여름엔 덥긴 하지만 습하지 않아서 그늘만 잘 찾아다니면 견딜 만해요. 바다에서는 늘 바람이 불어오니 더위가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더라고요. 겨울은 비교적 온화하지만 비가 자주 내리고 바닷바람이 쌀쌀해서, 바다 수영보다는 조용한 산책이나 박물관 나들이가 더 잘 어울리는 계절이에요.

 

크레타에는 도시들도 각기 개성이 달라요. 이라클리오(Heraklion)는 크레타에서 가장 큰 도시로, 행정 중심지이자 고대 유적지들이 가까이 있어요. ‘크노소스 궁전’은 이 도시에서 차로 조금만 가면 도착할 수 있는데요, 여기선 미노아 시대의 벽화와 궁전 구조를 가까이서 볼 수 있어요. 특히 ‘붉은 기둥’과 ‘황소의 도약’ 벽화는 고대 미술의 생동감을 그대로 보여주죠. 궁전은 지금은 폐허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상상하며 걸어 다니면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어요.

 

하니아(Chania)는 북서쪽에 있는 항구 도시로, 좀 더 낭만적이고 예술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어요. 옛 베네치아 시대의 건축물들과 좁은 골목길, 그리고 바다를 향해 나 있는 카페들이 특히 매력적인 곳이에요. 구시가지는 거리를 걷다 보면 갑자기 나오는 작은 예술가의 작업실이나 손으로 만든 도자기 가게, 전통 직물 공방이 많아요. 현지인들과 자연스럽게 눈을 마주치며 인사 나누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하니아의 매력이죠. 커피 한 잔에 두어 시간 앉아 있는 걸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라서, 일상에서 느끼기 힘든 여유를 만끽할 수 있어요.

 

레팀논(Rethymno)은 하니아와 이라클리오 사이에 있는 도시인데, 이곳은 중세풍의 건물들과 오스만 시대의 유산이 잘 어우러진 곳이에요. 도시의 성벽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크레타가 겪어온 역사들이 겹겹이 보이는 느낌이 들어요. 이곳에는 대학이 있어 젊은이들도 많고, 문화 행사나 공연도 자주 열려서 여행자에게도 뜻밖의 만남이 종종 생겨요.

 

크레타는 도시 외에도 자연 속을 걷는 재미가 정말 커요. 사마리아 협곡(Samaria Gorge) 같은 트레킹 코스는 이 섬의 대자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예요. 거대한 협곡 사이를 따라 걷다 보면, 깎아지른 절벽과 야생 염소(크리크리)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기도 하고, 바위와 나무 그늘이 만들어주는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걷는 길이 이어져요. 하루 종일 걷는 길이라 체력은 좀 필요하지만, 도착한 끝에서 바라보는 리비아 해의 풍경은 모든 고생을 잊게 만들죠.

 

바다를 좋아하신다면, 남쪽 해변들을 꼭 한 번 찾아보셨으면 해요.

북쪽보다 훨씬 덜 알려져 있고, 그래서 조용하고 깨끗해요. 엘라포니시 해변(Elafonisi)은 분홍빛 모래사장과 얕고 투명한 물빛으로 유명하고, **프레벨리 해변(Preveli)**은 야자수 숲이 강과 바다 사이에 펼쳐진 독특한 풍경을 갖고 있어요. 어느 해변을 가더라도 상점보다 더 먼저 나타나는 건 갈매기와 바위, 그리고 바람이에요. 상업적이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 많아서 마음이 한결 편해지더라고요.

 

여행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크레타 사람들의 태도였어요. 이곳 사람들은 말도 많고 정이 많아요.

낯선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와 인사를 건네고,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도와주려 해요. 가끔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호의적인데, 그게 진심이라는 걸 알게 되면 어느새 그 마음이 전염된 듯 나도 더 부드러워지고 웃게 돼요. 식당 주인이 디저트를 서비스로 주며 "이건 우리 어머니가 만든 거야"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때, 어쩐지 친척 집에 놀러 온 기분이 들기도 하죠.

 

다른 그리스 섬들이 주로 휴양 중심이라면, 크레타는 ‘삶이 있는 섬’이라는 느낌이 강해요.

관광객을 위한 것이 아닌, 섬 주민들의 일상이 그대로 살아 있는 곳이거든요. 그래서 여행 중에도 자연스럽게 현지인의 삶과 부딪히고, 어깨를 나란히 하게 돼요. 시장에서 직접 고른 토마토와 치즈로 간단한 샌드위치를 만들어 해변에 앉아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여행의 의미가 생겨요.

 

크레타는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크고 볼 게 많아서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만큼 머무는 시간만큼 다양한 감정을 주는 섬이에요. 처음에는 ‘어디를 먼저 가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며칠 지나면 ‘그냥 여기에 있자’는 마음이 들어요. 계획보다는 느낌 따라, 지도보다는 향기 따라 걷다 보면 진짜 크레타가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이 섬은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천천히 풀리는 그런 장소예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 있어도 괜찮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웃음 섞인 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져요. 아침에는 바다와 함께 시작하고, 점심에는 나무 그늘 아래서 쉬고, 저녁에는 노을과 함께 걷는… 그런 하루가 반복되는 곳이에요.

 

크레타는 떠날 땐 가볍게 떠났다가, 돌아올 땐 마음속에 묵직하게 남는 섬이에요. 자연과 역사, 사람과 음식, 모든 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이곳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하나의 ‘작은 세계’ 같아요. 그 속에서 스스로를 조금 더 천천히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찾게 해주는 곳, 그것이 바로 크레타입니다.